모세는 신명기 말씀을 통해 가나안으로 들어가는 길목에 서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삶을 줄곧 인도하길 원했습니다. 비록 그는 그들과 함께 그 약속의 땅에 들어갈 순 없었지만 말입니다. 그가 같이 가지 않으면서도 그들을 인도하는 방법은 바로, 하나님의 약속과 뜻을 담고 있는 율법, 하나님의 계명, 그분의 말씀을 전하는 것이었습니다.
모세는 사실 무척이나 그 언약의 백성들을 향한 하나님의 약속을 흠모했습니다. 그는 그 약속의 땅에 들어가고 싶었습니다. 그 땅이 ‘젖과 꿀이 흐르는 땅’으로 묘사될 만큼 좋고 기름진 땅이라서요? 아닙니다. 실제 그 옛날 가나안, 오늘날 팔레스타인 땅은 광야가 넓게 드리워진 척박한 땅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땅에서 백성이 자신을 온전히 의뢰하시길 원하셨습니다. 가나안은 진정한 하나님의 통치가 실현되도록 선택된 땅이었습니다.
따라서, 통치영역은 가나안, 통치의 주체와 대상은 하나님과 그 택하신 백성, 이스라엘 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이제 통치질서, 통치체계가 필요합니다. 바로 호렙산에서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모세를 통해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율법이었습니다. 이같은 질서체계인 법규, 율례를 받고, 하나님께서 다스리시는 신정국가로 비로소 출범하게 됩니다(출19:3-24:18). 하나님께서는 헌장, 헌법과도 같은 십계명을 두 돌판 친히 새겨 주셨습니다.
이로써 하나님의 통치가 이뤄질 수 있는 조건을 갖추어 졌습니다. 그러나 실제로 그 통치체계의 운영에 있어 허점이 발견되었습니다. 바로 모세 홀로 이를 해석하고 그 분별력을 바탕으로 율법을 통해 재판, 판단하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모세가 백성을 재판하느라고 앉았고 백성은 아침부터 저녁까지 모세의 곁에 섰는지라” (출18:13). 모세의 장인인 미디안 제사장 이드로가 이를 보고 얘기합니다. “…그대의 하는 것이 선하지 못하도다” (출18:17).
그리고선, 율례와 법도를 가르쳐서 마땅히 그들이 갈 길과 할 일을 보여줄 것을 권면합니다. 핵심은 혼자 감당할 수 없는 일이기에, ‘천부장, 백부장, 오십부장, 그리고 십부장’을 세워 일을 분담할 것을 요청합니다.
이와 같은 성경의 이야기를 통해 여러분께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고 우리의 삶의 옳고 그름에 분별과 판단을 스스로 숙고해 보시길 원합니다. 제가 영적 리더로서 난해한 말씀에 대한 해석에 있어 도움을 드릴 수 있지만, 그 말씀을 통해 각자 삶의 정황속에서 판단하고 적용하는 것은 여러분의 몫이 됩니다.
제가 전하는 일방의 말씀보다도 함께 말씀에 담긴 의미, 그리고 그것이 우리 삶에 어떻게 작동되는가 스스로 각자가 경험해 보는 시간이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그리고 그것을 교회 소그룹 안에서 함께 나눌 수 있으면 금상첨화겠다 싶어서 ‘공동체성경공부’라는 프로그램에 관심을 가지고 얼마전부터 작게나마 시도해 보고 있는 이유입니다.
이에 대한 적잖은 오해들이 있어서, 제가 가능한한 이 취지에 대해서 기회가 닿는데로 차근차근 설명하고자 합니다. 말씀에 대한 지식적인 부분은 제가 얼마든지 주석서 등을 참고하여 리서치를 통해 여러분께 전달해 드릴 수 있지만, 그 말씀을 여러분의 삶에 능력의 말씀으로 붙들고 살기 위해서 스스로가 그 말씀 앞에 서보는 훈련은 반드시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우리 각자는 ‘천부장, 백부장, 오십부장, 그리고 십부장’으로서 ‘택하신 족속, 왕같은 제사장, 거룩한 나라, 그의 소유된 백성’(벧전2:9)으로서의 존엄이 있습니다. 우리는 재판할 줄 알아야 합니다. 판단, 분별할 줄 알아야 합니다. 그 기준이 되는 것은 율법, 하나님의 계명, 말씀입니다. 우리의 이성, 지성, 감정, 우리의 기복적인 신앙이 아닙니다. 우리의 재판, 판단, 분별에 따라, 우리가 속한 공동체, 사회는 보다 더 나은 방향으로 가는가, 하나님의 뜻으로 가나안을 향하는가, 아님 광야에서 허송세월, 방황하고 마는가가 달려 있습니다. 여러분의 책임있는 역할을 기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