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느헤미야 4장과 6장 본문을 가지고 느헤미야 성벽 재건 프로젝트를 방해하는 대적세력에 대해 살펴 보았습니다. 그런데 당시 외부적으로 산발랏 일당의 공세가 점점 거세어지는 가운데, 이보다 더 심각한 문제가 사실은 이스라엘 민족 내부에서 독버섯처럼 자라고 있었습니다. 우리가 중간에 건너 띈 느헤미야 5장은 이렇듯 심각한 사회, 경제적 문제를 리더로서 느헤미야의 과감한 결단과 주도하에 극복해 가는 내용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시작합니다. “때에 백성이 그 아내와 함께 크게 부르짖어…” 큰 부르짖음은 우리의 삶에서 종종 극심한 고통에 시달릴 때 자연스럽게 나오는 반응입니다. 특별히 주목할 것은, 본문은 한 가정의 생계문제와 관련된 절박한 상황임을 묘사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원망은 다른 이방 민족, 대적 세력이 아니라 그 형제 유다 사람에게 향하고 있습니다.
그 까닭은, 당시 가난한 사람들을 상대로 높은 이자로, 소위 ‘돈놀이’를 하던 고리대금(高利貸金) 업자들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가난해서 빚을 지게 된 이유를 본문은 세 가지로 말씀합니다. 첫째 그들에게 딸린 부양가족의 수가 많았다는 것, 둘째, 흉년이 들어 그들의 삶이 도탄에 빠지게 되었다는 것, 셋째, 세금을 납부하기 위해, 즉 납세 의무를 이행하기 위해 빚을 지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당시는 B.C. 443년, 지금으로부터 2,500년전에 가까운, 시점은 까마득한 옛날이지만, 그들의 삶의 형편은 오늘날 우리의 삶의 모습과 많이 닮아 있습니다. 당시 흉년이 잦아 과거 엄청난 포도의 생산지였던 가나안 땅은 그 수확이 급감했을 것으로 짐작됩니다. 분명 이와같은 현상은 포도원만의 얘기는 아니였을 것입니다.
대다수의 백성들은 피폐해진 삶에 신음하였지만, 반면 부자들은 창고에 저장된 곡식이 있었으므로 어지간한 흉년에도 버틸 수 있었을 뿐만 아니라, 그들 중에는 그 때를 이용하여 높은 이자를 얹어서 빌려 주고 폭리를 취하는 자들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결국 ‘빈익빈 부익부’ 현상이 나타나 사회적인 빈부격차는 참으로 심각한 상황에 직면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빚을 갚지 못해 자녀들이 노예로 끌려가는 상황 등은 느헤미야를 극도로 분노하게 합니다 (6절). 성벽재건이라는 시대적 사명 앞에 그 어느 때보다 일치 단합이 요구되는 때에 그것을 깨뜨리는 부유한 자들의 횡포를 그가 얼마나 미워했는지를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는 곧 차분하게 문제의 해결책을 강구합니다.
먼저 이 일을 공론화합니다. 그들의 행위가 의롭지 못하고 선하지 못함을 책망하고, 하나님을 두려워 할 것을 말씀합니다 (9절). 더불어 그의 형제들, 측근들이 그 일을 하지 못하도록 금하고 (10절), 나아가 그 자신이 솔선수범하여 총독의 녹(祿)을 받지 않음으로 마땅히 누릴 수 있는 경제적인 유익을 포기하였습니다 (14절).
“누구에게서든지 양식을 값없이 먹지 않고 오직 수고하고 애써 주야로 일함은 너희 아무에게도 누를 끼치지 아니하려 함이니” (살후3:8). 느헤미야는 사도 바울의 경우와 같이 정당한 대가를 받을 권리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백성들에게 섬김의 본을 보이기 위해 헌신적이고 희생적인 삶을 작정한 것입니다. 재정, 경제적 문제 앞에 그의 진정성 있는 자세는 오늘날 자본주의의 폐해인 ‘물질만능주의’라는 세속적 이념에 맞서는 우리에게 주는 메시지입니다.